광고
광고

[최현덕 칼럼] 최현덕의 남양주愛 (16) -대한민국 최고의 명승지, 수종사

GNNet | 기사입력 2019/09/09 [09:31]

[최현덕 칼럼] 최현덕의 남양주愛 (16) -대한민국 최고의 명승지, 수종사

GNNet | 입력 : 2019/09/09 [09:31]

▲ 최현덕/(전)남양주 부시장 

 

오르는 길 뿐 아니라 내려오는 길 역시 매번 긴장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가파른 경사길을 돌고 돌며 올라갈 때 유일한 바람은 내려오는 차량과 교행하느라 중간에 정지하지 않는 겁니다.

 

힘이 부족해 바퀴가 헛도는 느낌이 날 때는 가슴이 철렁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올라온 만큼, 절 앞마당에서 내려다 보는 전망은 대한민국 최고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남양주의 대표적 자랑거리인 수종사(水鐘寺)는 운길산 7부 능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북한강과 남한강, 이 둘이 만나는 두물머리와 팔당댐, 물의정원과 자전거도로, 중앙선 철길이 모두 한 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참으로 장관입니다.

 

멀리 신라시대까지 올라가는 절의 역사는 조선 세조에 와 오늘의 기틀을 갖춥니다. 신병치료차 금강산을 유람하고 한양으로 되돌아가던 세조는 멀리 숲속에서 은은한 종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소리를 따라 산을 올라온 세조는 폐허가 된 천년고찰의 한 바위굴속에서 18나한상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종소리가 바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란 걸 알게 됩니다. 절의 중창을 명한 그는 절 이름을 수종사(水鐘寺)라 짓게 하고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습니다. 이제 500살이 더 된 두 노거수는 지금도 수많은 은행알을 떨구고 있지요.

 

이처럼 특별한 일화를 가진 수종사에는 그 뛰어난 경관 덕분에 서거정을 비롯한 문인과 재사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올 때마다 아름다운 시와 글, 그리고 그림을 많이 남겼습니다.

 

운길산 아래 사제(莎堤)마을에서 말년을 보낸 이덕형 선생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오성과 한음'의 주인공 한음 이덕형 선생은 두 차례의 왜란을 막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영의정까지 오르는 영광을 누렸지만, 끝없는 당파간 갈등 끝에 낙향합니다.

 

이 때 선생의 피폐해진 마음을 크게 위로한 것 역시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경치와 스님과 나눈 대화입니다.

 

특히, 수종사는 인근 마재 출신으로 조선의 실학을 완성한 정약용 선생과 그 동료들이 자주 모여 회합과 토론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성리학자, 천주교 신자, 그리고 불자였던 그들은 마재와 수종사, 강 건너 천진암을 오가며 세계 정세 흐름과 나라의 앞날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였을 겁니다.

 

하지만, 정조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이들을 서로 다른 운명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염원과 달리 조선은 끝내 쇄국과 멸망의 길로 치달았구요.

 

속세의 온갖 번잡함과 고단함에 지친 모든 분들에게 수종사에 올라 오시길 권합니다. '묵언(默言)' 표지가 붙어 있는 앞마당에서 말을 멈추고 스마트폰 잠시 끊은 뒤 오로지 경관에만 심취해 보십시오.

 

바로 옆 다실인 삼정헌(三鼎軒)에 들러 스스로 차를 우려내 마시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십시오.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께 절도 하고 500살 넘은 은행나무와 대화도 나눠 보십시오. 그렇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 그 때 하산하십시오. 등산로에 지천으로 깔린 달개비꽃에도 잠시 눈길도 주시구요.

 

머지않아 템플 스테이가 가능해지면, 물방울 떨어지는 듯 은은한 종소리 들으며 하룻밤 묵어가고 싶어집니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